어릴 적 바보 온달 이야기는 누구나 한번 쯤 들어봤을 것이다.
바로 그 곳 단양의 주요 여행 코스인 온달 관광지를 가 보았다.
물론 이야기만 알고 있었지, 온달 산성, 온달 동굴, 온달 관광지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고구려인의 기개가 돋보이는 동상? 석상? 입구 부터 간지를 내뿜는다.
입장 하려는 자, 관람료를 내라...
여기 부터는 세트장
집에 TV가 없는 관계로 TV를 안보는데...
그런 상황 속에서도 유일하게 봤던 드라마 "태왕사신기"
제주도에도 세트장이 있었는데...
잘 보면 무지개같은거 있음 ㅋ
규모는 제주도 보다 작지만, 관리 측면에서는 훨씬 잘 되어있다.
온달 산성도 갈 계획이었는데, 마침 온달 관광지 내부에서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
여기부터는 반 산행 시작
?
가까운 것 같으나 왕복 약 1시간 거리
정비가 잘 되어있는 등산로의 바람직한 예
▲ 온달 산성
저번 삼년산성에서도 느끼지만, 이런 걸 만들다니 정말 대단하다.
온달 산성 끝
온달 동굴 시작
온달 관광지 내에 위치해서 그런지 무료 입장
동굴의 협소한 구간이 있어서, 안전모를 쓰고 들어가야 한다.
이 구간은 오리 걸음 구간
온달 동굴 끝
고수 동굴이 7,80년대 풍의 동굴 탐험이라면
온달 동굴은 LED 전구 번쩍이는 현대식 동굴 탐험으로 느껴진다.
좋음
▲ 삼족오 광장
온달관에는 온달 장군의 이야기, 고구려 시대의 간략한 설명이 있다.
- 끝 -
* 간략한 온달 관광지 설명
현재 온달 관광지가 있는 영춘면 지역은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영토로서 고구려와 신라 간 치열한 영토전쟁이 벌어졌던 곳이다. 지금도 전쟁과 관련된 지명과 온달 산성을 비롯해 다양한 삼국시대의 국경문화유적이 남아 있다.
온달 관광지는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함께 고구려의 명장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전설을 주제로 조성된 테마파크이며 온달동굴, 테마공원 온달산성이 있고 영상테마파크에서는 태왕사신기, 연개소문, 일지매, 바람의 나라, 천추태후 등의 드라마가 촬영되었다.
* 주소 : 단양군 영춘면 온달로 23
* 문의전화 : 043-423-8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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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비스 - 바보 온달 이야기
1. 가난한 바보 온달
온달은 고구려 평강왕 때 사람이다. 얼굴이 험악하고 우스꽝스럽게 생겼지만 마음씨는 밝았다.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항상 밥을 빌어 어머니를 봉양 하였으며, 떨어진 옷과 신발을 걸치고 시정간을 왕래하여 당시 사람들이 그를 "바보온달"이라고 불렀다.
평강왕의 어린 딸이 곧잘 울었으므로 왕이 농담으로 "네가 항상 울어서 내 귀를 시끄럽게 하니, 커서 틀림없이 사대부의 아내가 못되고 '바보 온달'에게 시집을 가야 되겠다"라고 하였다.
왕은 그녀가 울 때 마다 이런 말을 하였다.
2. 평강공주와 결혼
평강공주의 나이 16세가 되어 왕이 딸을 상부 고씨에게 시집 보내려 하니 공주가 대답하기를 "대왕께서 항상 말씀하시기를 너는 반드시 온달의 아내가 되리라고 하셧는데, 오늘 무슨 까닭으로 전일의 말씀을 바꾸십니까? 필부도 거짓말을 하려 하지 않는데, 하물며 지존이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임금은 농담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대왕의 명령이 잘못되었으므로 소녀는 감히 받들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니, 왕이 화를 내어 말했다. "네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면 정말로 내 딸이 될 수 없다. 어찌 함께 살 수 있겠느냐? 너는 너 갈대로 가는 것이 좋겠다." 이에 공주는 보물 팔찌 수십개를 팔꿈치에 걸고 궁궐을 나와 혼자 온달의 집으로 길을 떠났다.
3. 무술 연마
공부가 금팔찌를 팔아서 전지, 주택, 노비, 우마, 기물 등을 사들이니 살림 용품이 모두 구비되었다.
처음 말을 살 때 공주가 온달에게 말하기를 "부디 시장의 말을 사지 말고, 나라에서 쓸모가 없다고 판단하여 백성에게 파는 말을 선택하되, 병들고 수척한 말을 골라 사오세요."라고 하니 온달이 그대로 말을 사왔다.
공주는 부지런히 말을 길렀다. 말은 날로 살찌고 건장해져 훌륭한 준마가 되었다. 이 말을 온달에게 주어 무술을 연마시켰다.
4. 사냥대회 우승
고구려에는 매년 봄 3월 3일을 기하여 낙랑 언덕에 모여서 사냥하여 잡은 돼지와 사슴으로 하늘과 산천의 신령께 제사를 지냈다.
그 날이 되어 왕이 사냥을 나가는데 여러 신하와 5부의 군사들이 모두 수행하였다.
이 때 온달도 자기가 기르던 말을 타고 수행하였는데, 그는 항상 앞장 서서 달리고, 또한 포획한 짐승도 많아서 다른 사람이 그를 따를 수 없었다.
왕이 불러서 이름을 듣고 놀라며 기이하게 여겼다.
5. 후주와 전쟁에서 선봉장이 되어 대승
이 때, 후주의 무제가 군사를 출동시켜 요동을 공격하자 왕은 군사를 거느리고 배산 들에서 맞아 싸웠다.
그 때 온달이 선봉장이 되어 용감하게 싸워 수십여 명의 목을 베니, 여러 군사들이 이 기세를 타고 공격하여 대승하였다.
공을 논의할 때 온달을 제일이라고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왕이 그를 가상히 여기어 감탄하기를 "이 사람은 나의 사위다"라 하고, 예를 갖추어 그를 영접하고 그에게 작위를 주어 대형으로 삼았다.
이로부터 그에 대한 왕의 은총이 더욱 두터워졌으며, 위풍과 권세가 날로 성하여졌다.
6. 온달산성에서 신라군과 전투
양강왕이 즉위하자 온달이 아뢰기를 "지금 신라가 우리의 한북 지역을 차지하여 자기들의 군현으로 만들었으므로, 그곳의 백성들이 통탄하여 부모의 나라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바라옵건데 대왕께서는 저를 어리석고 불초하다 여기지 마시고 군사를 주신다면, 단번에 우리 땅을 도로 찾겠습니다."라고 하니, 왕이 이를 허락하였다.
그가 길을 떠날 때 맹세하였다. "계립헌과 죽령 서쪽의 땅을 우리에게 귀속시키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그는 드디어 진격하여 아단성 밑에서 신라군과 싸우다가,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
그를 장사지내려 하였으나, 영구가 움직이지 않았다.
공주가 와서 관을 어루만지면서 "사생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아아! 돌아가소서!"라 말하자 관이 움직여 마침내 영구를 들어 하관하였다.
대왕이 이 소식을 듣고 비통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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